기타/ 독서2014.08.30 14:06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한 늙은 어부가 냉혹한 바다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스토리 때문인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인내하는 불굴의 의지 혹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연, 이런 식으로만 해석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텍스트 속 주인공은 그의 조각배보다 훨씬 큰 청새치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낚시는 음식을 마련하기 위한, 즉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잡으면 그뿐인데, 주인공은 자신이 감당하기도 어려운, 조각배보다 큰 청새치를 잡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러한 노인의 행동과 모습이 나에게는 그저 욕심 많은 늙은이로 비쳤다.

 

 

그리고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 떼와의 사투, 상어 떼는 노인과 바다의 텍스트 속에서는 뛰어넘어야 할 방해물 혹은 시련으로 나오는데, 문제는 분에 넘치는 욕심으로 청새치를 잡지 않았다면 피 냄새를 맡고 상어 떼가 몰려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인과 바다에서 다루고 있는 뛰어넘어야 할 방해물 혹은 시련은 어디까지나 주인공 자신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물일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했던 것들이 욕구를 넘어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욕망을 채우기 위한 논리들이 일반화되면서 이런 논리에 저항이라도 하듯이 모순들이 발생한다. 지금까지의 행위들이 과연 무엇을 위한 행위였는지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전 시대의 관점에서는 노인과 바다가 불굴의 의지 혹은 도전정신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시대의 관점에서는 시대착오적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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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부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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